"한국 현대도예의 위상정립과 발전과제"

우리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도(陶)와 자(磁)의 나라에 살고 있다. 지금도 수많은 도예인들이 진실한 작품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 굳건한 바탕을 이룩한 전통은 두 가지의 성격을 지녔다.
한가지는 수천 년을 두고 누적된 소중한 경험이 양질의 배양토를 마련하고 있어서 누가 어떤 일을 하던 곧 얻을 수 있는 공급이 가능하게 되어있다. 망설임 없이 진출할 수 있는 저력이 거기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이와 반대되는 상황으로서 끈질긴 보수성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것에의 시도가 빈번히 억제되어지거나 좌절되게 만든다.
더구나 새로운 개념의 도입에는 강력한 반발을 일으킨다. 이런 보수성에서의 탈피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로서 여간한 용기와 인내가 없고서는 그 성취가 불가능하다.
오늘의 현대도예는 이런 좌절의 터널을 통과한 후에야 겨우 햇빛을 보게되는 귀중한 경험을 겪었다. 경험 중에는 시간의 잠재와 능력의 축적도 있었다. 잠재의 심각성은 오히려 발로(發露)를 탄력 있게 할 수 있는 면도 있다. 현대 도예가들은 그런 탄력에 의탁하고 있다.
그들에게 큰 기대를 갖는 것은 바로 이 탄력에 의탁된 놀라운 적응력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 현대 도예계에 도래(到來)하는 시대의 전망은 예측하기가 까다롭다. 현대의 사조(思潮)가 너무 급변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발전의 과제를 살펴야 한다면 한줄기를 이루고 있는 과거와 현대의 추세를 다시 한번 정리해보는 일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도자기는 수천 년의 흐름을 지속하면서 시대에 따라 또는 조형사상(造形思想)에 따라 제작되었다. 과거의 도예가 용(用)을 위주로 하였다면 현대의 도예는 미(美)의 추구 쪽에 초점을 맞추는 시각을 중요시하게 되었다.

아름다움의 감각은 지극히 자아적(自我的)인 것이어서 비객관성(非客觀性)을 유발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결국 주관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는 사세에 부닥치게 된다.
각자의 주관에 따른 작업은 작품의 내용을 매우 다양하게 하여서 과거에는 전혀 볼 수 없었던 각양각색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대단한 변화가 초래되는 결과를 가져와 개성 강한 작품이 생성된 것이다.
이들 작품이 아무리 개성적이라 해도 그들을 통괄하여 보면 어쩔 수 없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게 마련이다.

이 시대라는 시대감각과 기법의 수준에 제한이 따르기 때문이며 현대적인 특질을 지녔다 하더라도 과거에서 미래로 흘러가는 흐름 속의 한 가닥으로 존재하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어쩔 수 없는 평가에 직면하게 된다.

아름답다는 개념은 조형사조(造形思潮)에 따라 수시로 바뀌게 마련이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 할지라도 그의 초기 작품과 말기의 것이 서로 다른 작풍(作風)을 지닐 수 있다. 아름다움의 추구는 그래서 끊임없이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지만 작가의 감각에 따른다 하더라도 계속되는 작심(作心)의 골격이 기반을 이루고 있어야 한다. 작심의 발로는 시대사조에서 자극되는 일이 많다.
현재의 우리 주변은 외래의 요소들로 가득 차 있고 외래하는 정보들이 난무하고 있다. 그들은 대부분 생소한 것이기 때문에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수가 많다. 오늘의 도예계에 약간이나마 혼돈이 있다고 하면 바로 이런 생소한 것의 비판 없는 채택에서 기인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의 진로는 여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우리 나라는 세계에서 인정해 주는 도예의 나라이다. 외래의 요소에서 자극 받기보다는 오히려 수천 년의 축적에서 알맞은 것을 찾아 골라 쓰는 방법을 강구해 볼 필요가 있다고 반성해 보는 일이다.
생소한 것에 적응하기 위한 노력보다는 완숙의 축적에서 비약하는 방안을 탐색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다.
남의 것으로는 세계적인 각광을 받기가 어렵다는 사실을 우리는 누누히 보아 왔다. 단지 그들의 장점을 소화해서 내 것을 만들어 세계에 내놓을 필요가 있다는 것을 절박하게 느낀다. 외국 도예가들과의 교류에서 이점은 점점 더 분명해 지고 있다.
이제 모방의 시대는 지났다고 할 수 있다. 자아(自我)의 발현이 세계적인 작품을 만들어 내는 길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 시점에 와 있다는 생각이다.
이제 우리가 잡는 진로는 든든한 기반에서 출발하여야 한다. 그 기반의 구축이 우선 선행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이 구축은 차분히 수천 년을 돌이켜 보는 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하겠다.

도예가 조정현 1990. 6월호 세라믹스
출처:http://www.kcaf.or.kr/art500/chochunghyun